블로그를 시작하며

2020. 3. 10.


나는 지금 쓰던가, 아니면 아예 쓰지 말아야했다.

그 유명한 요한 하위징아가 자신의 저서인 호모 루덴스의 서문에 썼던 표현이다. 지금 내가 그렇다. 평소에 블로그 만든다 말만 해놓고 한 게 무어란 말인가? 남은 시간이 평생인 것처럼 겜질만 쳐하고 있었으니 되는 게 있나. 게임이 아니더라도, 블로그의 본질에 맞지 않는 잡다한 요소들에 마음을 빼앗겨 쓸데없이 변명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디자인이 어쩌고 어째? 마크다운 전처리기가 어쩌고 어째? 다 부질없다. 아니, 부질없다기보다는 중요도가 한참 낮다. 실제로 써야하는 건 지금 내가 열심히 타자로 치고있는 생각의 기록들이다. 니미럴 웹사이트(강한 표현을 위해 직역하도록 한다)를 보고 깨달았다. 내가 븅신짓거리를 하고 있었다는 걸 왜 진작에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세상엔 아름답게 피어올라 사람의 눈을 가리는 폭죽이 많다. 하늘로 올라가 터져서 이윽고 아무 것도 남지 않는 불꽃놀이용 폭죽 말이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고, 시작도 예외는 아니다.

블로그를 만드는 이유

블로그를 만들어야겠다 다시금 마음먹은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아니, 사실 별 거 없고 그냥 만들고싶어서 만들었는데 그러면 옆집 만득이가 다 뜯어먹고 남은 고갈비마냥 논리가 휑할 것 같아서 열심히 살을 붙여보려고 한다.

하나. 트위터에 쓰기엔 여러모로 부적절한 글들을 담을 공간이 필요하다.

부적절하다는 게 뭐 불특정 다수가 보기에 생리적으로 별로라거나 한 게 아니다. 이건 트위터의 특징때문에 생긴 문제다. 트위터가 뭔가? 마이크로블로깅 서비스다. 그럼 마이크로블로깅이 뭔데? 단문, 대개 140~150자의 글자 수 제한을 두어 짧은 글을 다수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서비스다. 140자로 내 개잡멍멍소리를 다 담을 수 있나? 그럴 리 없다. 따라서 블로그다. 또 하나의 문제점이 있는데, 내 계정 성격이 명확하지 않고 그냥 이거저거 다 주워담는 계정이다보니 팔로워들도 종류가 다양하다. 난 내 헛소리를 그분들 전부에게 전달하고싶은 마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블로그다. 트위터는 “카레를 먹을 때는 접시를 햝햝”같은 소리를 지껄이라고 있는 곳이지 기술 아티클을 구구절절 읊으라고 만들어놓은 서비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둘. 쓰는 글을 주제별로 분류해야 한다.

사람은 보통 관련된 주제의 글을 모아서 보고싶어하지, 철수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마냥 이거저거 왔다리갔다리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뭐라구요? 커뮤니티에서 랜덤 글 이동해주는 게 얼마나 재밌는데 그러냐구요? 그럼 당신은 그 커뮤니티를 좀 끄고 생산적인 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날 볼 거 충분히 다 본 상태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하루종일 위키질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문제는 지금 이 테마로는 글 분류가 쉽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당장에 돌아가도록 만드려니 급조한 느낌이 팍팍 들 것이다. 언젠가는 고치겠지 ㅋㅋ

결론

그래서 나는 블로그를 만든다. 왜 네이버나 티스토리, 미디엄같은 기성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냐고 물으신다면… 그냥 내가 힙스터 기질이 다분해서라고 생각해주시면 된다. 위에 하던 뻘짓거리들만 봐도 충분히 설명될 거라고 생각한다. 병신. 아무튼 그렇다.

나는 지금 블로그를 만들던가, 아니면 아예 만들지 말아야했다. 그리고 난 지금 만드는 것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