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회고
2020. 12. 30.
서론
이전에 쓰던 글이 있었는데, 쓰다보니 인생 한탄이 된 것 같아서 싹 다 지우고 다시 쓴다. 회고를 쓰는 지금 할 소리는 아니지만, 지나간 먼 일을 굳이 꺼내와서 곱씹으며 우울에 잠기는 건 내 정신에 안 좋은 일이다. 옛날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하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이번 년도 글이니까 이번 년도에 있었던 일들에만 집중해보도록 하자.
블로그
이번 년도 3월에, 지금 이 글이 올라가는 블로그를 만들었다. 마침 Rust
에 관심이 생겼던 때여서 Rust
로 만들어진 SSG
인 Zola
를 사용하였고, 현재 GitHub Pages
로 배포하는 중이다. 블로그에 올라가는 글을 전처리하기 위해 시작했던 토이 프로젝트도 있다. 토이 프로젝트의 특성상 기일이 정해져있지 않아서 지금 굴러가고 있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마무리지어야겠지. 또한, 직접 일일이 빌드해서 저장소에 올리기는 번거로우니까 Travis CI
를 적용하여 자동 빌드/배포되도록 설정했다. 마음이 내킬 때 GitHub Action
으로 갈아탈 생각이다.
이번 년도는 현재 이 글을 합쳐 총 7개의 글을 올렸다. 트위터에다 싸지르던 글들보다는 훨씬 건설적인 것 같아서 헛된 짓은 아니구나 싶다. 내년에도 이 정도 양은 쓸 수 있길 바라며 다음으로 넘어가보자.
GitHub
수치로만 따지자면 2019년의 3배 가량 기여했다. 대부분의 경우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 제작이었다. 하지만 특별히 가치있는 기여들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원래 생각대로라면 2020년이 끝나기 전에 완성되어야 했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신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최대한 빨리 완성하고 다음에 만들 걸 또 정해서 달리고 싶다. 생각해보니 가치라면 오히려 저번 년도에 했던 기여가 더 높을 것 같다.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운영 중인 저장소에 작게나마 처음으로 기여해본 커밋이었기 때문이다. 2021년에는 나 자신에게 괜찮은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기대 반 불안 반이다. 적어도 정신이 딴 데 팔려있던 이번 년도보다는 나아져야겠지.
상황
사회복무요원에서 소집해제되었다. 병역의무를 끝냈다는 것만으로도 한숨 돌릴 수 있지 않을까? 복무지가 역대급 꿀무지라 더욱 쓸데없는 짓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적당히 놀고 공부를 좀 더 했어야 했는데 멍청하게ㅋㅋ
마음가짐
신입생일 때와 복학을 앞두고 있는 지금의 생각이 상당히 차이가 있다. 신입생일 때는 내가 하고싶은 일이 주변 사람들보다 비교적 명확하게 잡혀있다고 느꼈었다. 게임 프로그래머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계속 달리면 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물론 컴퓨터 공부도 재밌지만, 내가 갈 길은 정해져 있고 이 길을 따라가며 잠깐 한눈팔 수 있는 눈요깃거리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자면,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기 위한 밑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겠다. 복학을 앞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정확히는 뭘 벌이로 하며 살고싶은지를 모르겠다. 게임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에 흥미를 잃어버렸다고 할까. 게임을 만드는 것은 아직도 상상하면 즐겁고 가슴이 뛴다. 이쪽으로 취업하지 않더라도 혼자서 계속 노력해서 뭔가를 만들 것이다. 문제는 이걸 꼭 직업으로 해야되냐는 것이다.
게임 프로그래머가 하는 일은 게임 개발의 일정 부분에 불과하다. 개발될 때 그저 부품으로서 존재했던 내가 과연 그 게임을 내가 만들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는 규모가 작더라도 내 게임을 만드는 것이 꿈이지, 게임 개발의 단순 부품이라도 좋으니 꼭 이걸로 먹고살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진로의 선택지가 상당히 넓어진다. 나는 이 망망대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경주마를 앞만 보게 하기 위해 달아놓은 가리개를 치워버리면 혼비백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랄까. 몇년 전의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좀 더 많은 고민을 했을텐데.
또 한 가지 생각해봐야할 것은, 나는 내가 하고싶은 걸 하며 살기 힘들 거라는 점이다. 나는 창업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월급쟁이 인생 직결이라는 말인데, 그럼 결국 나는 회사가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한다. 그러려고 돈받고 다니는 것일테니까. 예전에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며 꿈을 키웠다면, 그 부풀어오른 꿈을 현실이라는 바늘로 콕 찌른 셈이 된다. 구멍나버린 삶의 의미에 체념이라는 반창고를 붙이며 버텨내야 한다는 것이다. 2021년에 나는 3학년으로 복학한다. 따라서 사회 전선에 내던져지기까지 남은 시간은 거진 2년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안에 나는 내가 가야할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만약 찾았다고 하더라도 그 길을 갈 수 있을만큼 준비가 되어있을까?
후기
2020년을 끝내는 글은 뭔가 시원섭섭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복무도 끝났고, 본격적으로 다시 개발자로써의 역량을 닦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표를 잃어버린 지금, 나는 긍정적인 감정보다는 불안함을 더 크게 느끼고 있다. 나는 이때까지 뭘 해왔고 뭘 해야 하는 걸까? 이런 고민도 학부생일 때나 가능하겠지. 아직은 여유가 있으니까, 할 수 있을 때 실컷 해두자. 내년에는 좀 더 명확한 목표를 세워서 고민없이 달릴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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