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회고

2024. 5. 10.


4월 한 달간 자력으로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생활 패턴도 제법 많이 무너져서 낮과 밤의 구별이 잘 가지 않는 삶을 살았고, 그에 비례해서 자기비판을 넘어 자기혐오에 가까운 생각을 많이 하기도 했다. 멀쩡한 시간에 잠을 잔 날이 드물었고, 식사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엔 밥 하나는 잘 챙겨먹어서 생활 패턴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일어나보니 하루가 지나있어서 그냥 떠나보냈던 날들도 꽤 있다. 나도 내가 식욕이 없는 날이 생길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좀 아팠던 걸까.

그래도 약속을 잡아서 밖에 나가는 일은 좀 있었다. 만나준 친구들한테도 고맙고, 특히 모각작을 열어주셔신 너구리님께도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무 활동 없이 집에만 처박혀서 허송세월을 보내던 때에 작게나마 ‘그래… 박혀있을 만큼 박혀있었으니 다시 해야겠지’하는 생각을 실천하게 된 계기가 되어서. 계절도 바뀌고 마음도 다시 잡을 겸 청소도 한 바퀴 싹 했다. 화장실이랑 방은 물론이고 여름도 다가오고 있으니 에어컨도 청소하고, 기존에 쓰던 이불도 세탁하고 얇은 이불을 꺼냈다. 취업에 다가가는 일은 아닐지라도, 삶을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는 중이다.

코드스냅

4월 달에 그나마 생산?적인 일이라고 한다면 역시 번역 작업을 들 수 있겠다. 이번 호의 주제는 ‘API가 세상을 연결하는 방법’으로, 내가 고른 글은 API 버전 관리를 전반적으로 설명하는 글이었다. 원본부터가 읽는 데 무려 16분이나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매우 긴 글이어서 내가 골라놓고도 좀 헉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번역을 해나가며 API 버전 관리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고, 특히 버전 관리의 종류가 생각한 것보다 더 다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직접적으로 접했던 버전 관리는 이전에 진행했던 이길로그 프로젝트에서 백엔드 분들이 적용하신 URL 버전 관리 뿐이었기 때문에 ‘음~ 보통 이렇게 하는 거구만’하고 넘어갔었는데, 좀 더 명확하게 ‘이건 하나의 방법이었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깨달음과 더불어, 음차어 번역에 대한 고민도 좀 길게 가져가야 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컴퓨팅 영역에서만 쓰이는 용어면 또 모르겠지만, 다른 분야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를 어떻게 번역해야 잘 읽힐 지에 대해 머리를 좀 굴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시 중 하나가 ‘거버넌스’라는 단어인데, 이 음차어가 단순히 편의를 위해 음차한 것인지, 혹은 다른 곳에서 자주 쓰이는 음차어이며 원어의 뜻을 한마디에 명확하게 담기에 한국어로는 부족한 점이 있어서 그대로 사용된 것인지, 또 이 단어를 어떻게 처리하게 되느냐에 따라 번역이 어떻게 받아들여질 지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매우 많으며, 따라서 번역이란 단순히 어떤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몇 년만에 동물원

얼마만일까? 일상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보게 되는 경험이. 시간이 맞았던 친구와 함께 어린이대공원을 한 바퀴 쭉 둘러보게 되었다. 영상이 아니라 두 눈으로 직접 본 여러 동물들이 꽤 신기해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사진첩에 먹을 것 이외의 무언가가 저장되는 것도 간만인 것 같다. 간만에 카톡 프사도 바꿨다. 근엄하게 앉아있던 분홍 펠리컨이 귀엽고 웃겨서 저장할 수밖에 없었다ㅋㅋ

돌이켜보면 아직 나는 살아가며 경험한 것이 정말 적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식문화에 알게모르게 집착하게 되는 것도 그 반동이 아닐까? 세상에는 신기한 것이 너무 많고, 다 경험하기엔 힘든 것들이니까 이런 것에라도 신경을 세우고 있어야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무의식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기왕 태어난 이상 많은 걸 경험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

이번 달의 잘한 점

  1. 직접적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4월에는 좀 우울감에 빠져 살았던 것 같다. 생활 패턴이 나가리났던 것도 그렇지만, 저번 회고에 적었던 것처럼 프로젝트 결과가 그닥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점이 제일 큰 것 같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원래 궤도로 돌아오려는 노력을 달이 끝나기 전에 시작했다는 점을 좀 자기 위안으로 삼으려 한다.
  2. 다른 사람들과 정한 것들은 미루지 않았다. 번역 활동이라거나 스터디 준비라거나. 그래도 지킬 것들은 지켰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3. 우울하다고 계속 처박혀있지 않고 기분을 환기시키려고 밖에 많이 나갔다. 평생을 집돌이로 살았다만, 막상 나가보면 재밌는 게 많다는 걸 발견해서 좋았다.

이번 달의 못한 점

  1. 생활 패턴 개박살난 걸 고쳐야 한다. 제때 자고 제때 일어나야하는데, 자꾸 자는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지나간 하루에 만족하지 못해서 자는 시간에 제때 자지 못하고 폰을 보거나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결국 하루를 알차게 보내야 가능한 일일까.
  2. 사실 이조차도 다 내가 약한 탓이 아닐까… 딱히 뭐 우울증도 아니고, 그냥 사실 내가 게을러빠진 거고 모든 것에 핑계를 대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적는 와중에도 이렇게 생각하면 더 기분 나빠질 뿐인데 하는 생각이 든다. 실시간으로 정신력이 깎이는 느낌이…

끝으로

그래도 이번에는 보름까지는 미루지 않고 한 달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평소에 내 자신은 좀 무딘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냥 걱정 없이 태평하게 살았기 때문에 그랬구나 싶다. 그래도 어떻게든 이 기분을 벗어나야 할테니, 5월에는 좀 더 바쁘게 무슨 일이든 만들어서 움직여봐야겠다(실제로 일정을 좀 더 많이 만들고 있기도 하고). 많이도 필요없겠다. 5월의 내가 4월의 나보다는 나은 기분을 느끼고 더 좋은 상황에 있도록 해봐야지.